4월 11, 201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Norbert Weber, Germany, 1870 출생.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베네딕토 수도회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길 간절히 소망한 독립열사들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록한 자료를 통해 당시의 상황들도 알 수 있는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나라 국민은 아니었지만 기억하고 싶은 이방인 한 명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일제 치하의 조선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당시를 상세히 기록한 독일의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입니다.

노르베르트 신부는 가톨릭 선교사로서 여러 나라를 거쳐 1911년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선교사들은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의 삶에 함께 동화되어 그들을 이해하고 포교활동을 하였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노르베트 신부는 한국인 삶에 함께 스며들어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영상 사진, 1927, 한국영상자료원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영상 사진, 1927, 한국영상자료원

그는 한국의 전통 및 민속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품앗이를 하는 공동체 문화, 가족에 대한 책임감, 조상과 어른에 대한 공경심 등은 베버 신부를 감동시켰습니다. 또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어울러 살아가는 조선인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그가 기록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에서 이렇게 기록도 남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그 찬란함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당시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 때문에 한국의 전통은 많이 사라지거나 훼손되고 있었습니다. 베버 신부는 그가 사랑에 빠졌던 나라를 위해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책으로 발간하여 이를 알립니다. 한국을 떠나며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다고 할 정도로 아쉬움이 컸던 그는 10여년 후 한국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때 베버 신부는 직접 독일에서 최신 영상 장비를 들여와 본격적인 기록에 착수합니다. 그는 아름다운 금강산의 풍경과 더불어 한국인 삶에 깊게 녹아든 불교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책도 펴냈습니다. 그의 행적 중 또 하나 놀라운건 그가 직접 자비를 털어 구입한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금강산 그림 21폭을 책에 담았다는 점입니다. 그가 남긴 사진 자료 중에는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서거하신 이후의 가족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이 사진은 베버 신부가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가족에 대해 알게 되고 직접 사진을 찍어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할애해 우리에게 잊혀질뻔한 갚진 유산을 남겨준 뜻깊은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안중근 의사 가족들, 1911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향해 우리는 애써 대한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베버 신부가 마지막으로 고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하늘에서 본다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봅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영상 사진, 1927, 한국영상자료원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영상 사진, 1927, 한국영상자료원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中 영상 사진, 1927, 한국영상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