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 2019

노랑, 망각과 기억

장샤오강, 중국, 1953. Fantasy(Yellow Memory), 2002. Lithograph in colors, ©Zhang Xiaogang

4월을 색으로 칠한다면 어떤 색을 선택하실 건가요?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땅에서 피어오르는 초여름의 내음으로 초록과 노랑을 고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개한 벚꽃잎이 발끝으로 흩어지고 노랑과 초록의 기운이 빼꼼히 올라오는 4월, 유독 노랑은 마음이 저려 오게 합니다. 2014년 4월,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자 온 국민은 노란 리본을 가방에, 왼쪽 가슴에, 그리고 팽목항에 걸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염원했지만 탑승객 304명은 끝내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노랑의 시간은 무사귀환에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바뀌었고 우리는 이제 매년 4월이 돌아오면 노란색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다짐하겠지요. 잊지 않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5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겁니다. 노랑의 기억은 남고 검은 진실은 밝혀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공유하는 이미지는 망각과 기억의 아픔을 묘사한 중국 작가 장샤오강(Zhang Xiaogang, 1953-)의 <노란기억(Fantasy)>(2002)입니다(이 작품의 제목은 Yellow Memory 혹은 Fantasy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문으로 주로 표기되는 Fantasy를 병기하였습니다). 장샤오강은 중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중국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엉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기억을 몽환적으로 표현하며 개인과 가족을 캔버스에 담아냅니다.

장샤오강은 1990년대 중국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억에 대한 변화를 포착하고 노스탤지어를 꿈꾸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노란 기억(Fantasy)>은 그가 2000년부터 선보이는 ‘망각과 기억’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망각과 기억(Amnesia and Memory)>의 연작에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과거의 기억에 아파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모습은 동일해 보입니다.

장샤오강 작품 속 인물들은 비슷한 표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복제된 인물을 자세히 보면 귀와 목으로 연결되어 이어져 밖으로 뻗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이런 장치는 혈연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고, 그림 안의 인물과 감상하는 밖의 사람들까지 연결해주는 장치였습니다. 또한 이전 작업에서는 둘 혹은 셋 이상의 인물을 한 화폭에 담았다면 이때부터는 소녀와 소년이 등장하여 얼굴을 부각시킵니다. 감상자는 필연적으로 작품 속 인물과 눈을 마주치게 되고, 감상자는 인물의 텅 빈 눈 속에서 잔잔한 바다 위 거대한 파도를 만난 것 같은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아래로 향하는 근심에 찬 두 눈은 석가모니상의 눈과도 비슷한 세상을 뚫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진 파편의 흔적(확대) Fantasy(Yellow Memory), 2002, ©Zhang Xiaogang

무채색 페인팅 위에 노란색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얹음으로써 인물의 개인적인 기억을 그림 속에 소환합니다. 그가 기억을 노란색으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과거’에 대한 개념이 드러나게 합니다. 소년의 머리에서 떨어진 파편은 기억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을 연상시키며, 이처럼 인물을 포함한 우리 인간의 기억도 결국 본래의 모습은 언제든지 파편화 되어 왜곡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우리의 기억도 언제든지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4월이 오면 노란색의 기억이, 4월이 지나면 무채색의 망각으로 매년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노랑의 기억은 남고 검은 진실은 밝혀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