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 2019

엄혹한 현실 속 오윤의 꿈 <1960년 가> - 4.19를 기억하며

오윤, 대한민국, 1946. 1960년 가, 1969. 캔버스에 유채, 260×130cm. 소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 헌법 중

4・19 혁명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등장하는 민주주의 정신이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자유당의 부정 선거 사건은 대구・부산・마산 지역 고등학생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이후 이들의 저항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지식인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졌습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상당수의 교수 또한 사직서를 내며 현실에 동참하고자 했습니다(이 중에는 서울대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화가 장욱진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에서 4・19 혁명을 표현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당시 제도권을 상징하는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힘은 미술계에서 막강했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다양한 성격의 갤러리와 미술관도 부족했기 때문에 미술이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간혹 이림의 [4・19], 김영주의 [4월의 어느 날], 김세용의 [4・19] 등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은 국전에 4・19혁명 소재의 작품을 출품하거나 전시회를 개최하며 4・19 저항 정신을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이들의 활동 범위는 매우 제한되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윤

이러한 엄혹한 현실 속에서 오윤(1946~1986)이 등장합니다.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시인 김지하는 그와 처음 만난 시점을 4・19 혁명 이후 일이 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오윤은 농부가 꿈이었던 고등학생이었고, 김지하는 서울대 미학과 재학생이었습니다(대다수 국민 직업이 농부였던 1960년대, 대학생들은 자발적인 농활을 조직하며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오윤도 이러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오윤의 아버지는 아들이 농부가 아닌 미술을 하는 것을 원했고 그는 결국 미술 작가로서 그의 진로 방향을 결정합니다. 일 년을 재수한 끝에 196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한 오윤은 김지하와 함께 4・19 혁명 정신을 연결한 ‘현실동인’ 구성원으로 참여합니다. 재수하는 동안 그는 전국을 여행하며 민중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접하였고, 이것은 훗날 그가 민족・민중 미술에 혼을 쏟는 자양분이 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오윤의 [1960년 가](1969)는 200호 캔버스로 완성한 초기 작품입니다(오윤의 초기 화풍은 멕시코 벽화미술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4・19 혁명 정신을 이 작품에 담아 [현실동인전](1969)에 오경환, 임세택 3인과 함께 전시에 참여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시는 성사되지 못했고 현재는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윤의 [1960년 가]는 소실된 상태이며, 당시 팸플릿에 수록되어 있던 흑백 이미지만이 남아있습니다.

오윤, [1960년 가], 확대(왼쪽)

작품을 들여다보면 4・19 혁명 주역인 학생들과 노동자, 그리고 농민들이 화폭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왼쪽은 이승만 정권을 대변하는 경찰이 학생, 노동자들로 구성된 시위대열과 대치하며 긴박한 순간을 전달합니다. 경찰의 등 뒤로 무릎 꿇고 벌거벗은 사람들도 그려 넣어 현실의 부조리함과 녹록지 않은 도시 생활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도시와 농촌을 나누어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자로 가려지거나 고된 표정으로 삶의 어려움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시라고 해서 사람들의 표정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디론가 이동하려는 도시민들은 모자를 눌러 쓴 남자들 앞에 막혀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화면은 두 개의 상황을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를 대칭적으로 보여주며 팽팽한 화면 구성을 연출합니다. 이처럼 오윤은 농민과 학생, 그리고 노동자를 4・19 혁명의 중심으로 표현하며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오윤, [1960년 가], 확대(오른쪽)

짧은 생을 살았던 오윤은 민중의 신명을 그리며 오늘날 한국 민중의 전형을 대표하는 도상을 그린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그렸던 4・19 혁명의 순간의 도상은 2019년 오늘 우리의 도상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혹은 얼마나 같을지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참고문헌: 김미정, 「1960년대 민족・민중 문화운동과 오윤의 미술」, 2015 / 김지하, 『흰 그들의 길』, 학고재, 2003 / 오윤, 유홍준, 이철수, 김지하, 『오윤』, 현실문화, 2010